과거시험 합격률과 공부 기간: 조선의 고시생들은 어떻게 살았나


조선시대 양반의 삶을 다룬 매체에서 빠지지 않는 장면이 바로 먹을 갈아 붓을 들고 과거시험장을 가득 메운 유생들의 모습입니다. "가문에서 과거 합격자 하나 나오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과거 합격은 신분 유지와 출세의 유일한 정통 경로였습니다.

그그렇다면 조선의 유생들은 과연 얼마나 긴 시간을 공부에 바쳤을까요? 그리고 당시 과거시험의 실제 합격률은 어느 정도 수준이었을까요? 현대의 국가 고시보다 훨씬 치열하고 고되었던 조선 시대 고시생들의 수험 생활과 과거 제도의 엄혹한 현실을 들여다봅니다.

1. 수십 년은 기본: 조선 고시생들의 평균 공부 기간

조선 시대에 글을 읽기 시작하는 나이는 보통 5세에서 7세 사이였습니다. 천자문으로 시작해 십삼경과 각종 역사서를 암기하고 시문(詩文)을 짓는 훈련을 매일 반복했습니다.

소과(진사시·생원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하거나 합격 자격을 얻는 나이가 평균 20대 중후반이었습니다. 그리고 진짜 관직으로 나아가는 대과(문과)에 최종 합격하는 평균 연령은 30대 중후반(35~37세)이었습니다.

  • 기본 수험 기간 20~30년: 유년기부터 수련을 시작해 30대에 합격한다고 해도 꼬박 25년 이상을 공부에 매달려야 했습니다.

  • 백수(白首) 고시생의 등장: 50대, 60대가 되어서도 합격하지 못해 머리가 흰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시험을 치르는 일이 일상이었습니다. 실제로 80세가 넘은 유생에게 국왕이 특별히 합격 판정을 내려주는 '노인 우대' 국록 행사도 자주 열렸습니다.

2. 수천 대 일의 바늘구멍: 절망적인 과거시험 합격률

조선의 정기 과거시험인 식년시는 3년에 한 번 열렸습니다. 물론 증광시나 별시 같은 비정기 시험도 자주 열렸지만, 공급에 비해 수험생 수의 증가가 훨씬 가팔랐습니다.

대과의 최종 선발 인원은 정기 시험 기준 단 33명에 불과했습니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과거에 응시하는 양반의 수가 급증하면서, 한양에 모여드는 응시자만 수만 명에 달했습니다. 초시(지방 및 한양 1차 시험)와 복시(2차 시험)를 거쳐 최종 33인을 뽑는 전시까지 가려면 단순 계산으로도 수천 대 일의 경쟁률을 뚫어야 했습니다.

내가 시험장에서 쓴 글이 제아무리 뛰어나도, 수만 장의 답안지 중에서 시험관의 눈에 띄어 최종 33인 안에 들어가는 것은 가문의 운과 엄청난 노력이 결합되어야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3. 한양 상경과 체류비: 수험생 가족을 휘청이게 한 비용

지방에 사는 유생이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상경하는 과정은 막대한 경제적 부담을 동원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 장거리 이동과 노자 돈: 수개월에 걸쳐 한양까지 걸어가야 했으므로, 노자 돈과 종자(수중을 들 노비)를 동원하는 데 막대한 경비가 들었습니다.

  • 한양에서의 체류비: 시험 일정이 연기되거나 복수 응시를 위해 한양에 머물 경우, 셋방을 얻고 식솔을 챙기는 비용으로 가산이 기울기도 했습니다.

  • 책값과 지필묵 비용: 당대의 종이와 붓, 먹, 서적은 매우 비싼 사치품에 가까웠습니다. 가난한 유생들은 종이를 구하지 못해 모래판 위에 글씨를 쓰며 연습해야 했습니다.

이 때문에 족보상 양반이라 하더라도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가난한 유생들은 한양 시험에 응시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지방에서 유교 학자로 남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4. 과거시험장의 부정부패와 난장판 풍경

시험의 희소성과 합격에 따른 보상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조선 후기로 갈수록 시험장은 공정함을 잃고 난장판으로 변해갔습니다. '난장판'이라는 말이 바로 과거시험장의 어수선한 모습에서 유래했을 정도입니다.

  • 거장(巨漿)과 선장(先場):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는 일꾼(선장)을 고용하거나, 대필 업자인 거장을 몰래 시험장에 데리고 들어가는 불법이 자행되었습니다.

  • 커닝과 시험지 바꿔치기: 옷감에 미세하게 경전을 적어 오는 환투(커닝)는 물론, 시험관과 유착하여 답안지(시지)를 모범 답안과 바꿔치기하는 부정행위가 기승을 올렸습니다.

정부에서는 과장(시험장)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부정행위자를 유배 보내기도 했으나, 신분 상승과 가문의 사활이 걸린 과거시험의 과열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핵심 요약

  • 조선시대 양반들은 평균 20~30년 이상 과거 공부에 매달렸으며, 대과 최종 합격자의 평균 연령은 30대 중후반이었습니다.

  • 대과 최종 선발 인원은 33명에 불과해 수천 대 일의 극악의 합격률을 뚫어야 했습니다.

  • 한양 상경 경비, 지필묵 및 책값 부담으로 인해 경제력이 없는 가문은 과거 응시 자체가 어려웠습니다.

평균 30년 가까이 공부해서 단 33명 안에 들어야 했던 조선시대 과거시험의 현실, 어떻게 보셨나요? 느낀 점을 댓글로 편하게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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